tvN 어쩌다 어른(20.7.7일 방영) 창씨개명 진실의 방으로..
- etc./뻥카 바로 잡기
- 2024. 6. 19.
유튜브에서 알고리즘으로 tvN '어쩌다 어른' (2020. 7. 7) 을 보게 됐다. 아래의 캡쳐 사진처럼 최태성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일제시대에 민족 말살 통치를 위해서 "창씨개명을 안 하면 학생들의 입학 및 진학 거부!" 된다고 말이다. 왼쪽 위에는 '민족 말살 통치, 조선인이라는 의식을 지워라! 역사의식을 깨워주는 한국사 길잡이 <최태성>' 이라고 찍혀 있다.
노파심에 한 마디 하고 시작 하자면, 일제시대를 미화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돈벌이를 위한 국뽕을 발동하기 위해서 없는 말을 만들어서 증오를 심으려는 자들을 경계 하자는 것이다.
궁금해서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도서관 (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nl.go.kr) ) 신문자료를 찾아봤다.
아래보는 것 처럼 1940년 2월 13일이 본격적으로 창씨개명을 신문에 광고하던 일자다.
이 시대에는 중학교 합격자도 가문에 경사로 아래와 같이 1943년3월에 신문기사에 실렸는데,
그 중 매일신보 1943년 3월 19일자 '각 학교 합격자 발표 - 경기공립중학교'를 클릭해 들어가 봤다. 아래와 같은 기사가 3면 7단 중앙에 실려 있다.
제목은 各學校合格者發表(각학교합격자발표) 京畿公立中學校(경기공립중학교) 이고 명단이 쭉 적혀 있는데, 그 중에 창씨개명을 하지 안은 것 같은 학생이름을 위의 그림처럼 빨간색을 칠해봤다.
金承祚(김승조), 李耀諾(이요낙), 閔丙憲(민병헌), 成大餃(성대교), 李世吉(이세길), 金 ? 斗(김?두), 南相 ? (남상?), 李 香(이향), 沈載天(심재천), 沈政變(심정변), 林 墡(임선), 李海釋(이해석)이라는 학생들의 조선식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다시 최태성 씨의 말로 돌아가보자. 창씨개명을 하라고 한지 3년이 지났는데, 어떻게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학생들이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을까?
둘 중에 하나다. 최태성 씨가 거짓말을 했거나, 악독한 일제 관보인 매일신보 기자가 거짓말로 기사를 썼거나 말이다.
정확한 사실을 말하자면 일본식 씨로 변경 하지 않으면 예전에 쓰던 조선식 성이 씨가 되고 이름이 명으로 자동 등록 되는 것이다. 결론은 기존의 조선이름을 쓰던지 일본식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하던지간에 100% 창씨개명을 한 것으로 관에서는 보는 것이다.
위의 그림은 1941년 2월에 발매된 음반이다. A 이난영 - 진달내시첩, B 장세정 - 역마차라고 적혀 있다.
위의 그림은 1943년에 발매된 음반이다. A. 남인수, 박향림(옵빠는 풍각쟁이 부르신 가수분) - 혈서지원, B. 남인수, 이난영 - 이천오백만 감격이라고 적혀 있다.
오해할까봐 자료를 더 찾아 봤다.
위의 레코드 중앙을 보면 한글로 진달내 詩帖(시첩)이라고 한글 + 한자 혼용 되어 있고, 밑에 李蘭影(이난영)이라고 한자로 쓰여 있고, 그 밑에 오케- 쏼라 쏼라 써 있다. 최태성님... 어떻게 창씨개명 하지 않은 유행가 가수가 음반을 내고, 또 그 음반에는 어떻게 한글이 적혀 있을 수 있죠?
창씨개명 하지 않은자 사회적 매장 당하고, 문화말살 정책으로 한글 못 써야 정상 아닙니까?????
혹시라도 친일가요라고 불리는 혈서지원과 이천오백만 감격을 조선어로 불러야 선동이 잘 되어서 그렇다고 한다면, 그 말이 핵심이다. 계속 조선말을 써 오던 이천오백만의 조선인에게는 외국어를 학습시키는 것보다. 조선어를 쓰게 하는 것이 더욱 더 일본 제국의 뜻을 전달하기 쉽지, 굳이 민족의 정기를 말살한다고 조선어를 못 쓰게 하고 일본어 쓰면 몇 %나 알아 먹겠냔 말입니다. 최태성~C (비공식적으로 일본어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은 인구의 약 20% 정도였다.)
그래도 일제가 나빴어. 민족문화 정책을 했어~ 했어~라고 주장하는 최태성 씨에게 한 가지만 물어 보고 싶다. 현재 제주도에 사는 한국인 부모가 자식을 국제학교에 보내서 영어로 공부 시키는 것도 자식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민족문화를 말살하려는 야욕을 가진 것인가? 미국으로 자식을 유학 보내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을 지우려는 것인가 말이다...
그 누군가가 주장하는 민족문화 말살 정책을 벌인 악랄한 일본제국은 위의 사진으로 보이는 매일신보 '쇼와20년(1945년) 8월 13일(패망 2일 전)'에도 꿋꿋하게 한자와 한글을 혼용하여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이 정도면 일본 제국 사람들이 '일본인이라는 의식을 지우기' 위해 조선의 한문과 한글이 장려 되고, 일본 문화가 역으로 말살 당한 거 아닌가?
p.s 조선왕조실록도 한글로 데이터화가 진행되고 있고, 구한말부터 최초 발행된 한성순보(1883년 10월 31일) 부터 거의 모든 전.근대 신문의 데이터베이스화가 끝났다. 대구라의 시대 진실은 내가 찾아야 한다.
https://www.nl.go.kr/newspaper/index.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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